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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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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세상에 놀기위해서 왔다.
새로운 것도 시간이 지나면 어쩔 수 없이 평범한 것으로 변해가는 것처럼, 사람과 주변 세상의 관계도 그렇다.현실은 하늘의 그림처럼 끊임없이 모습을 변화 시킨다. 그러나 변화의 속도는 가능태 공간에서 물질적 실현의움직임을 느낄 수 있을 만큼 그렇게 빠르지는 않다. 구름의 움직임과 형태 변화도 저속 촬영한 장면들을 고속으로 돌려볼 때만 눈에 띄듯이 말이다.
변화의 신선함은 일 순간 삶에 활기를 주기는 하지만 그도 마찬가지로 이내 희미해진다. 특별했던 일이 평범한 것으로 바뀌고, 잔치의 기쁨은 일상 속에 파묻혀 희미하게 사라져 버린다. 따분하다.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따분함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알기 쉽게 대답하기는 어렵다. 따분함과 싸우는 법을
설명하기가 훨씬 쉬울 것이다. 영혼과 마음은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 특별한 감동과 재미를 불러일으키는
온갖 놀이를 고안해낸다. 장난감은 따분함을 벗어나는 데 쓰이는 좋은 수단이다. 놀이는 그보다 더 좋다.
 
놀이기구를 타는 것, 숨바꼭질 등 여러형태의 재미있는 장난들이 아이들에게 인기를 얻는다. 사람은 자라면서
더욱 복잡한 오락거리를 고안해낸다. 스포츠 경기에서 가상현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업들도 본질적으로는
다름 아닌 놀이일 뿐이다.
전혀 놀이라고 볼 수 없는 직업이 있으면 말해 보라. 사람이 어떤 일을 한다면 그는 어떤 식으로든 놀이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른들은 지적인 척하면서 상식적으로 아이들이 하는 일을 놀이라 부른다.
그러나 그들 또한 자기의 일에 어떤 중요성을 부여해놓고 그것을 가지고 놀고 있는 중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 전적인 책임감을 느끼며 거기에 몰두한다. 아이에게 무엇을 하냐고 물어보라. 그러면
아이는 진지에게 대답할 것이다. “놀고 있잖아요!” 어른이 일을 할 때 방해해보라. 그는 흥분하여 말할 것이다.
난 지금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단 말이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생각해보자. 놀이는 진지한 것이다. 놀이를 하지 않을 때 아이는 무엇을 하는가? 보통은
어영부영 시간을 보낸다. 그러면 성인들은 어떠한가? 어영부영 빈들거린다. 일이 없으면 지루하고 따분함이
찾아온다. 그 때문에 또 다시 어떤 놀이든 붙잡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놀이는 단지 따분함을 벗어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인가? 놀이는 무었때문에 필요한 것일까? 질문을
다시 바꿔보자. 이 따분함, 곧 감동 결핍의 원인은 무었인가? 사실 이 질문은 보기처럼 평범한 질문은 아니다.
놀이에 대한 애착의 근저에는 이 세상만큼이나 오래된 필요성이 존재하고 있다. 생명체가 본능으로 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존의 본능? 우리의 상식은 그렇게 알고 있지만, 그것은 올바른 대답이 아니다. 종족보존의
본능, 번식이 아닐까? 그러나 그 또한 맞지 않다. 그렇다면 대체 뭐란 말인가?
 
가장 원초적 본능은 자신의 삶을 어떤 식으로든 스스로 통제하고 조종하고자 하는 욕구다. 이것이 모든 존재의
행동의 기저에 존재하는 원리이다. 자기 보존, 번식 등을 포함한 나머지들은 이 원리의 결과로서 나온 것이다.
말을 바꾸면, 모든 존재의 삶의 목표와 의미는 현실의 조종에 있다.
 
그러나 주변 환경이 당신이 원하는 것과 다르게 움직이면서 통제불능 상태로 당신에게 적의를 품고 대든다면
현실을 조종하기란 불가능하다. 당신을 괴롭히고 심지어 당신을 없애려 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당신이 삶을 사는게 아니고, 삶이 당신에게 멋대로 일어나고 당신은 이런 상황에서 어떤 대처도 할 수 없을 때,
그것은 모욕적이고 두렵게 느껴진다. 이런 이유로 생명체는 주변의 환경을 통제해야 하는 절박한 무의식적인
필요성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 같은 갑작스런 이론은 많은 사람들에게 뜻밖의 놀라운 말로 들릴 수도 있다. 지금까지 자기의 보존 본능이
가장 근본적인 동기라고 믿어왔는데, 그것이 더 근본적인 무엇의 결과일 뿐이라니!
 
그렇지만 이것은 지금만 이상하게 느껴질 것이다. 잘 살펴보면, 생명체는 생존의 번식 등 무슨 일을 하든 모두
주변 현실을 스스로 통제하려 행동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여기에 근본적인 동기가 있고 모든 생명체의
행동 근거인 의도의 원천이 있다.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통제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따분함 자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현실을
조종하고자 하는 끊임없고 꺼지지 않는 갈망만이 있을 뿐이다. 어떻게든 현실을 자신의 의지에 복종시키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놀이는 현실을 조종하는 모델로서 역할을 한다.
 
예컨데 어떤 새는 솔방울 열매를 갖고 놀기를 좋아한다. 솔방울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조정되지 않는 현실의
일부분이다. 그러나 새가 그 솔방울에 놀이라는 속성을 부여하자마자, 그 현실의 일부분은 조종 가능한 것으로
변한다.
 
탈것을 타고 가는 것도 일종의 조종이다. 현실은 나를 태우고 달린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인다. 다른
모든 놀이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규칙을 따른다. 내가 원하는 대로 벌어진다. 놀이의 줄거리는 정해져
있어서 상황을 미리 예측할 수 있다. 물론 주도권을 잡기 어려운 놀이들도 있다. 하지만 모든 놀이는 일어나는
모든 일을 결국 자신의 의지에 복종시키는 행위로 귀결된다.
 
음악과 영화, 책 등 모두가 영혼과 마음을 위한 놀이기구이다. 드라마를 볼 때 멋진 음악과 마음을 잡는 장면이
펼쳐진다. 우리는 드라마를 보면서 복수를 하는 장면을 보면서 대리 만족도 하고 스릴도 즐긴다. 드라마 속의
주인공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것은 모두 드라마 속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아무 걱정 없이
상상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현실을 가지고 노는 이 놀이는 잠잘 때도 멈추지 않는다. 영혼과 마음은 꿈 속에서도 즐거움을 찾는다. 꿈 속의
공간에서는 현실이 의도의 가벼운 숨결에도 유연하게 잘 복종한다.
 
마지막으로, 또 하나의 방법으로서 공상을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가끔 존재하지 않는 현실을 꾸며낼 수 있다.
멋진 환상들이 그것이다. 그런 공상은 현실로 실현되기 전까지는 아주 특별한 것이다. 그것은 멀리있다. 반면
그것에 접근하기는 아주 어렵다. 거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기가 힘든 것이다.
 
우리들이 매일 의무적으로 하는 일들은 평범하고 따분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사실 날마다 하는 일상적인 일은
따분한 것이 아니라 내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따분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 일들은 내가 원하는 대로 진행
시키기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현실에서 벗어나 단순하고 예측 가능한 놀이로 도피하는 것이다.
 
우리는 불가피한 현실을 모두 벗어나지 못한다. 인간의 삶은 여러 상황과 조건때문에 현실에 영향을 받게된다.
현실은 대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펼쳐진다. 원하는 것을 쉽게 얻기는 너무 힘들다.
 
사람들은 원하는 것을 얻기위해 보통 한 가지 방식으로만 행동하는데, 그것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면서
주변세상에 직접 영향을 미치려 애쓰는 것이다. 바로 접촉해서 행하는 직접적인 행동은, 조종의 한 형태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유일한 방법이 아니며, 효과적인 방법도 아니다.
 
우리는 다르게 접근할 것이다. 우리는 편안하게 세상이 우리가 원하는데로 스스로 움직이도록 만든다. 앞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모두 그런 방법론에 관한 것이다. 트랜서핑은 직접적인 행동을 하지 않고 현실을 조종하는
테크닉이다. 다만 놀이에서처럼 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그렇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