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피의 법칙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 이상하다? 왜, 도데체 무슨 이유로 세상이 그렇게 몹쓸 짓을 한단 말인가? 그것은 그냥 선입견이거나 미신이 아닐까? 아니다. 그런 경향성은 정말 존재하며, 그런 법칙을 피할 수 있는 방안을 쉽게 찾을 수 없다. 다행히 트랜서핑 모델은 그 법칙의 원인을 밝혀줄 뿐만 아니라 거기서 벗어날 방법도 가르쳐준다.
트랜서핑의 원리는 정확히 작용하며, 그것만 따르면 원인을 알 수 없는 많은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당신은 손에서 힘을 빼고 '세상의 멱살 잡기'를 멈춰라. 그러면 세상도 우호적으로 변해서, 당신의 말을 따르게 된다. 세상을 놓아주지 않으면 자석처럼 반대 극성의 모든 것을 자기에게로 끓어당기게 된다. 그러나 머피의 법칙은
아직 다가 아니다. 반대되는 것들이 서로 충돌하면 그것은 악화일로를 걷는다.
이름 자체에 핵심이 담겨 있는 유명한 정반합(正反合)의 법칙은 보편적인 지식이다. 이 법칙이 존재하는 이유
는 무엇일까? 正과 反이 하나로 정합하는 과정은 기존부터 유지되어 오던 正의 모순을 부정하며 새로운 상태
의 反이 나타나고, 反역시 모순이 있어서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한 상태인 合이 완성되는 과정이다.
그런데 왜 실제는 정반합(正反合)의 법칙과 달리 두 측면이 대치상태에만 머물러 있는 것일까? 그 대치하는
양측은 맞부딪쳐서 싸우기전까지는 서로를 건드려 자극하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싸움꾼들이 서로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그런 전쟁 상태는 끊임없이 지속될 것이다.
그런 일은 일상에서 수시로 일어난다. 물론 사람마다 그 정도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말해서 핵심
은 모두 이것이다. 어떤 일이 당신을 어느 순간 균형을 잃게 만들 수 있다면, 그 일은 마치 악의를 품은 것처럼
꼭 일어나고야 만다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어떤 것을 지나치게 고민하면서 우울하다면 당신의 신경은 예민해 진다. 그럴때
마치 그것과 연결되기나 한 것처럼 광대같은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당신의 신경을 더욱 날카롭게 만들려는 듯
시끄럽게 지껄이면서 폴짝폴짝 뛰어다닌다. 당신은 흥분하고 그 광대는 온통 미쳐 날뛴다.
화를 돋우는 법은 얼마든지 있다. 당신이 급하게 서두르며 늦을까봐 조바심을 낼 때면 거기도 광대가 나타나
손뼉을 치면서 소리 지른다. "자. 서둘러. 어서 가야지!"
이 순간부터 매사가 당신에게 대항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우아하고 품위있는 걸음걸이로 당신의 길을 가로
막아서 당신이 지나가지 못하게 만든다. 당신은 최대한 신속하게 문을 지나가야 하는데 사람들이 아주 찬천히
걸어가며 길을 막는다. 도로에서도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마치 모든 일이 그렇게 준비된 것처럼 보인다. 물론
원래 조급할 때는 세상이 온통 느리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징조들이 나타난다.
엘리베이터나 자동차가 고장나고, 버스는 연착하고, 도로가 갑자기 막힌다. 여기에는 악의적인 뭔가가 객관적
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다른 예를 들 수 있다. 당신이 어떤 일에 대해 걱정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다른 사람들도 당신을 짜증나게
하는 짓거리를 벌인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갑자기 정신없이 난장판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옆에 있던 누군가가
당신을 화나게 만든다. 여기저기서 장애물들이 마구 튀어나온다. 당신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는 늦게
나온다. 어쩌면 보고 싶지 않은 사람과 같이 나타날 수도 있다.
불쾌감이 쌓일수록 외부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는 점점 더 강해진다. 스트레스가 강해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괴롭힌다. 흥미로운 것은, 그들도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은 그런 행동들이
다른 누군가를 괴롭힐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런 행동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인간의 무의식적인 심리에는 많은 맹점이 있다. 사람들이 대부분의 경우 무의식적인 동기로 움직인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그러나 그보다 놀라운 것은, 무의식적인 행동동기를 만들어내는 그 힘이 사람의 마음 안에
있지 않고 외부에 있다는 점이다.
그 것은 실재하는 에너지 정보적 실체, 즉 살아있는 존재들의 사념 에너지로부터 생성되는 펜듈럼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리얼리티 트랜서핑 1 권”에서 이미 많은 이야기를 했다. 갈등의 에너지를 수확할 수 있는 곳에서는
언제나 펜듈럼이 나타난다.
펜듈럼이 의식적으로 뭔가를 꾸며내는 의도를 갖고있다고 생각 하지 말라. 펜듈럼은 단지 양극성을 에너지장
의 불균형을 감지하고, 거기에 달라붙어 에너지를 빨아먹으려 할 뿐이다. 하지만 이것은 아직 약과다. 정말로
끔찍한 것은, 그것이 갈등의 에너지를 먹어 치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사람들로 하여금 에너지를
더 많이 만들어내도록 행동하게끔 꼬드긴다는 점이다.
펜듈럼은 사람들의 에너지를 빨아들이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한다. 펜듈럼은 사람들을 보이지 않는 줄로 역어서
꼭두각시 인형처럼 조종한다. 펜듈럼이 어떤 방법으로 사람의 동기에 영향을 주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대단히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인간의 깨어있는 의식은 펜듈럼도 접근하기 어렵다. 하지만 펜듈럼은 그럴 필요가 없다. 잠재의식에 접근해도
충분히 에너지를 수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게 모든 사람은 각자의 수준에서 눈뜬채로 잠들어 있다. 사람은
많은 일을 의식이 풀려 있는 상태에서 기계적으로 처리한다. 깨어 있는 의식을 가지고 이렇게 명징하게 알아
차리지 못한다. '나는 지금 잠들어 있지 않으며, 내가 무엇을 하고 있고 왜 그렇게 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다.
특히 집에 있거나 군중 속에 있을 때는 의식의 각성도가 낮다. 집에 있을 때는 높은 수준의 자기통제가 필요치
않기 때문에, 사람은 이완되어 있고 거의 잠들어 있다. 오히려 집밖의 인간관계라는 좁은 범위 안에서만 휘말
리기 쉽다.
펜듈럼의 작용을 보여주는 가장 단순한 예를 들어보자. 당신이 어떤 사람을 따라 걷다가 그를 앞서려고 한다.
앞서가기 위해 당신이 왼쪽으로 가려고 하면 그 사람도 갑자기 같은 방향으로 걸음을 옮긴다. 마치 당신을
가로막기라도 하려는 듯이 말이다. 이번엔 당신이 오른쪽으로 앞지르려고 하면 그 사람도 또 무심코 같은 쪽으
로 방향을 바꾼다.
무엇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방향을 바꾸게 만드는 것일까? 그는 당신을 보고 있지도 않은데 말이다. 게다가
당신이 그를 지나쳐가든 말든 그것이 그에게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어쩌면 그가 어떤 식으로든 등 뒤에서
누군가가 가까이 오는 것을 느끼고, 본능적으로 '경쟁자'를 앞으로 보내 주지 않으려고 한 것일까? 이런 생각
이 들 수도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살아 있는 자연에서의 본능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경쟁심은 상대방의
얼굴을 서로 마주보고 있을 경우에만 나타난다. 그것은 경쟁심이 아니라 펜듈럼이다. 길 걷던 사람이 방향을
바꾸게 한 원흉은 바로 펜듈럼인 것이다.
길을 걸을 때, 사람은 똑바로 걸으려면 어떻게 걸어야 할지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걷는 방향에 관한 한 그는
잠들어 있다. 그래서 그의 걸음은 펜듈럼에 의해 저절로 이쪽저쪽으로 방향이 흔들린다. 방향을 선택하는 동기
는 잠재의식에 놓여 있다. 그 순간에는 잠재의식이 통제되지 않고 있고, 그래서 펜듈럼이 접근할 수 있는 가능
성이 열려 있는 것이다.
그때 당신은 그에게 접근하면서 그를 앞지르려고 했다. 사실 작기는 해도 그 또한 갈등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펜듈럼이 이 갈등의 에너지를 더 크게 만들기 위해 그 사람으로 하여금 무심결에 발걸음을 옆으로
옮기게끔 유도해서 당신의 길을 막음으로써 상황을 더 악화시킨 것이다.
그러나, 펜듈럼은 의도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펜듈럼은 의식적인 의도를 갖지 않기 때문이다. 그와 마찬가지
로 균형력도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일을 수행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여기서 지금 말하고 있는 건 그 메커니즘이
아직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어떤 현상에 대한 것이다. 어떤 실체의 사려 깊은 지적 행동에 관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오직 개별적인 현상과 에너지 정보 세계의 자연법칙을 살펴보고 있는 것일 뿐이다.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펜듈럼이 작용하고, 그것이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접근에 성공하는지, 그리고 에너지
차원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추론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차피 우리는 그것을 끝까지
알아낼 수가 없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결론뿐이다. 균형력이 서로 대립해 있는 것들을 대척하게 하면 펜듈럼
이 나서서 일어난 갈등의 에너지를 키우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펜듈럼의 법칙이다.
사소한 다툼이든 국가 간의 전쟁이든, 펜듈럼의 끝없는 싸움은 모두가 이 법칙에 따라 일어난다. 대립이 발생
하면, 일시적이고 형식적인 화해를 포함해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간에 이후의 모든 사건은 갈등이 악화되는 쪽
으로 펼쳐질 것이다.
펜듈럼의 법칙이 작용하는 곳에서는 멀쩡한 정신도 힘을 잃는다. 그 래서 개인과 마찬가지로 국가의 행동까지
종종 정상적인 정신의 범위를 벗어난다. 갈등 상황에서 인간의 동기는 펜듈럼의 지배력 아래 놓이게 된다.
이럴 때 자신의 지난 행위가 꿈처럼 인식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다. '내가 정신을 어디다 놓고 있었지? 어떻
게 그런 짓을 할 생각을 했을까?' 그것은 의식이 명징하지 않은 상태에서 행동해서 그런 것이다. 오로지 사태가
벌어진 후, 의식이 비로소 외부의 영향력에서 벗어났을 때에야 모든 일에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게 된다.
가까운 사람들이 서로 싸우고 헤어진다. 성격이 서로 안 맞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일이 잘 될 때도
있었지 않은가? 그런데 그 사람이 아무 이유도 없이 갑자기 돌변해서 적대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한다. 얼마전
까지 그런 행동은 그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당신도 그런 상황을 겪어본 적이 있지 않은가? 실제로는 누가
변한 것이 아니라, 펜듈럼의 강요를 받아서 자기도 모르게 전혀 용납될 수 없는 행동을 한 것이다.
펜듈럼은 서로 대립해 있는 사람들의 잠재의식 속에 들어 있는 동기를 조종한다. 그리고 그 조종의 방향은
갈등 에너지를 증폭시키는 쪽으로 맞춘다. 사람은 무엇이 자기를 대결 구도로 몰아가는지 알지 못한 채 전혀
부적절하고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특히,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잔인한 범죄에서 이런 현상을 찾아볼 수 있다. 훗날 피고석에 앉은 범죄자는 자신의
지난 행위를 돌이키면서 당혹해 한다. "제 정신이 아니었어요."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정말 그랬던 것이다.
범죄자 자신에게도 그것은 정말 뜻밖의 일인 것이다. 그는 자신의 행위를 끔찍한 악몽처럼 느낀다.
펜듈럼의 올가미에 주의가 사로잡히면 잠은 더욱더 깊어진다. 어떤 단체들, 예컨대 군대, 정당, 종교단체 등에
서는 사고와 행동방식에 관한 고정관념이 형성된다. 이것이 사람들을 세뇌시키 놓으면 그 사람의 잠재의식은
펜듈럼 앞에 완전히 개방된 채로 펜듈럼의 좀비처럼 움직이게 된다. 그리하여 객관적으로 볼 때는 전혀 이해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왜 단지 다른 신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을 그토록 잔인하게 죽일 수 있는가?
누구에게 방해가 되기에 그러는 것일 까? 그 때문에 참혹한 전쟁도 겪어야 한다. 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다.
자기보존 본능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부와 영토를 확보하기 위한 전쟁은 이해한다 하여도 믿음 때문에 싸우
는 것은 무엇으로 설명 하겠는가?
누구나 평화를 생각하지만 전쟁은 멈추지 않는다. 모두들 신은 유일하다고 생각하지만 종교 갈등은 끊이지
않는다. 선, 정의, 평화 등의 관념들은 끝없이 댈 수 있다. 모두 다 이해할 수 있는 사상이지만, 멀쩡한 정신은
간 데 없고 언제나 승리하는 쪽은 악이다. 악은 대체 어디서 오는 가?
악의 보편적 원천은 다름 아닌 펜듈럼이다.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 사실이 분명히 보일 것이다. 그 무엇과의
어떤 대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상관없이, 모든 것은 갈등의 에너지를 키우기 위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행여 싸움이 잦아든다 해도 그것은 잠시일 뿐, 나중에 더 크게 벌이기 위한 것이다.
물론 많은 종류의 펜듈럼이 존재하며 모두가 파괴적이지만, 그 정도는 다양하다. 그중 많은 수는 해롭지 않다.
예컨대, '트랜서핑'이라는 펜듈럼은 현실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더 많은 수의 사람들
이 숙고하게 하기 위해 꼭 필요한 펜듈럼이다.
모든 펜듈럼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꼭두각시 인형이 되지 말라는 것이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펜듈럼의 조직을 이용할 수 있도록 의식적으로 행동
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영향력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깨어나서 알아차리라. - 펜듈럼이 어떤 식으로 당신을 조작하고 있는지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이해
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미 반은 이룬 것이다. 펜듈럼의 영향력은 의식의 깨어 있는 정도에 반비례한다. 당신
이 눈을 뜬 채 백일몽을 꾸고 있는 한, 펜듈럼은 당신을 얼마든지 자신의 영향권 속에 가둬둘 수 있다. 무엇보다
도, 개인적으로 당신에게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펜듈럼의 파괴적인 싸움에 끼어들지 말라. 당신이 만일 군중속
에 있다면, 행동의 무대에서 객석으로 내려와 주위를 둘러보고 잠에서 깨어나라.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지?
나는 지금 상황을 명료하게 알아차리고 있나? 이것은 왜 필요하지?'
백일몽에서 깨어나는 것은 이처럼 절대적으로 명징해야 한다. '지금 나는 잠들어 있지 않고, 내가 무엇을 하며,
왜 그렇게 하는지를 명확히 알고 있다.' 이렇게 상황을 명료히 알아차리고 있다면 만사는 순조롭게 풀려나갈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아주 작은 갈등 상황에서도 당신은 꼭두각시 인형에 불과한 것이다. 예를 들어,
이웃사람이 당신이 끔찍이도 싫어하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당신의 성질을 돋우고 있다. 당신이 해야 할 일
은 어떤 방법으로든 펜듈럼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거기에 반응하지 않고 무심해지는 것은 실제로 거의
불가능하다. 감정을 죽이는 것은 도움이 안 된다. 그러는 대신 당신의 주의를 딴 곳을 돌려야 한다.
자신의 음악을 한 번 들어보라. 너무 크게 틀지는 말고 이웃의 음악을 덮을 수 있을 만큼의 음량으로 들으라.
또 주의를 돌릴 수 있는 다른 방법들도 생각해 보라. 다른 데에 마음을 몰두하기에 성공한다면 이웃은 차차
조용해질 것이다.
다른 경우도 마찬가지다. 만약 '광대가 날뛴다면 그것은 당신의 주의 가 어떤 올가미에 걸려들었다는 것을 뜻
한다. 펜듈럼의 게임에 말려든 것이다. 게임의 목적은 갈등 에너지를 증폭시키는 데에 있다. 올가미에서 벗어
나 자유를 얻으려면 주의의 스위치를 전환해야 한다.
전반적으로 보자면 상황이 그리 심하게 나쁘지는 않다. 눈을 뜬 채 잠들어 있지만 않다면 뭔가가 '악의를 품고
달려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이 모두가 다 헛소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어떤 존재
가 당신을 조종하고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그것을 받아들이든 말든 그것은 개인적 선택의
문제다. 그리고 무턱대고 믿어야 할 것도 아니다. 스스로 관찰해보고 결론을 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