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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도덕경(道德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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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德經에는 천하를 장악하는 방식이 쓰여있다. 도덕경 제 1장에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明,
설명될 수 있으면 진정한 道가 아니고 이름과 명칭이 개념화될 수 있으면 그것은 제대로 된 이름이 아니다.
이 세계에는 자기의 구체적인 모습은 없지만 이 세계를 가능케 하고 기능하게 해주는 영역이 있다. 그것을
무(無)라고 하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명칭하여 유(有)라고 한다.

이 세계의 모든 현상을 다 대립되는 두 계열, 유와 무의 긴장으로 되어 있다. 이것이 노자 도덕경 안에 나오는
모든 내용을 설명하는 뿌리이다. 노자는 기본적으로 자연의 질서를 인간의 질서로 만들고자 하였다. 그리고
자연의 질서를 도(道)라고 말했다. 道라고 표현한 자연의 질서는 이런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이 세계는 무(無)로 표시될 수 있는 부분과 유(有)로 표시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주역 이론처럼
이 세계를 무의 영역과 유의 영역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無가 먼저인가? 有가 먼저인가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유무(有無)는 공존하기 때문이다. 똑같은 상태에서 똑같은 존재적 위상을 갖고있다.
 
유무가 공존해서 세상이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이 노자의 기본 사상인데 이것이 왜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가?
그리고 이것이 왜 현대적 시각인가?
 
데카르트도 비슷하게 이 세상을 정신의 영역과 물질의 영역의 관계로 설명하였다. 우리는 동양 철학은 오래된
학문이기때문에 고전 학문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그런데 동양철학은 사실은 20년전에 시작된 신흥 학문이라
생각할 수 있다. 동양의 고전학은 오래전부터 존재하기는 하였으나 이 학문들이 본격적으로 철학적으로 해석
되고 발표된 시기는 1847년 즈음부터 니시 아마네(1829-1897)라는 일본 학자가 필로소피(서양 철학)를 소개
하며 시작되었다.
 
그러면서 동양에서도 철학이 하나의 학문으로 정립되기 시작했다. 오래전 중국의 성인의 學文들이 있었지만,
서양사적으로 진정한 철학은 이때 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동양 철학은 중국의 고전학을 재해석하고
철학적으로 다루는 학문을 뜻한다.
 
그러면 동양 철학은 어떤 것인가? 동양 철학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말하기 전에, 동양이 철학 사상이 확립
되기 시작했던 그 당시 상황을 이해해야 전체적인 그림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철학이 어떤 것인가? 그것이
노자를 이해하는데 왜 필요한가 하는 이야기를 하도록 하자.
 
중국 철학을 중국 고유의 전통 사상으로 최극까지 발전시킨 철학자가 장자라는 책에 주를 단 곽상(郭尙)이다.
252-312 중국 서진의 사상가였던 곽상은 장자주(莊子注)라는 책을 통해서 장자의 사상을 전국에 전파하였다.
곽상은 독화론(獨化論)을 주장을 펴는데, 독화론은 모든 개별적 존재들은 완결된 존재들이다. 라는 사상이다.
철학이 발전했다 하는 것은 철학들의 세계관으로 중국 사회가 실질적으로 완벽하게 작동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철학과 현실 생활의 유기적인 작동이 잘 이루어져서 이것이 동진 시기에 중국 철학은 극에 이르게 된다.
 
이후 중국의 5천년 역사에, 큰 사상적 변화가 일어났다. 한나라 말기에 불교가 들어온 것이다. 지금까지 일반적
진실로 믿고있던 노자와 장자의 사상이 불교의 사상과 완전히 배치되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중국의 사상이
다분히 유무론적 사관이었다면, 불교가 주장하는 것은 “이 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허상이고 본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없다.”라고 것이다. 그런데 이들 사상은 각자 장점과 단점을 갖고 있는데, 불교는 이론의 수준이
높지만 중국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고, 도교는 중국것이지만 사상적 수준은 불교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당연히 각 사상은 이론 투쟁을 통해 자신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려 노력한다. 그래서 불교는 중국화를
하는 것으로 도교는 이론화의 방향을 향해 매진한다. 각자 자신의 발전을 위하여 도교에서는 불교의 이론들을
대폭 수용하고, 불교에서도 도교의 의례와 도가의 사상적 특색을 대폭 수용한다. 상호 투쟁과 융합의 과정들을
겪으며 당나라 초에 불교는 중국화에 성공하고, 도교는 이론화에 성공한다. 이렇게 중국철학이 불교를 완전히
흡수하면서 새로운 중국 고유의 사상으로 재정립된다.
 
이를 재정립하는데 크게 기여한 이가 있었는데 그가 “주자”라는 사상가였다. 그는 “신유학”이라는 사상을 중국
중국 고유의 사상에 접목을 하여 새롭고 체계적인 사상적 틀을 구축하였다. 그리하여 주자학은 중국에서 널리
보급되었으며, 이어서 이것이 명나라에 이르러 양명학(陽明學)으로 발전하게된다. 그다음에 명나라말기에는
고증학(考證學)으로 넘어가서 청나라때 사회 변화와 사상 변화가 발전하면서 고증학이 널리 퍼져나간다.
 
청나라 초기에만 해도 서양과 동양 사이에 경제적 격차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중국이 경제적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그런데 18세기에 서양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1760년부터 1840년대까지 영국 경제가 비약적
으로 발전한다. 이후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영국의 제국주의가 동양의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한다.
 
특히 1840년에 일어난 아편 전쟁을 계기로 서양은 동양보다 현실적으로 우위를 점하게 되고 동양은 굴욕적인
사건을 계기로 해서 서양에 완전히 짓밟히게 된다. 군사력이나 산업 생산 등 모든 방면에서 서양에게 우위를
뺏기게 된다.
 
노자는 자연의 질서를 자세히 관찰하고 응용하여, 도의 질서를 만들었습니다. 노자가 자연에서 발견한 것은
자연의 질서는 유무의 꼬임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유무가 상생한다는 이 주장은 노자가 자연을 관찰해서
발견한 것인가? 아니면, 생각이나 사유에서 발견한 것인가? 관찰에서 발견했다. 그러면 자연 현상을 관찰해서
발견한 것은 사유인가? 경험인가? 이것은 당연히 경험이다.
 
경험, 동양 철학은 기본적으로 경험에서 출발한다. 흔히, 서양에 비해 동양에는 논리학이 약하다 이런 주장을
하는데, 동양 사람들이 모자라서 논리학이 없는 게 아니라 논리학이 그렇게 필요하지 않은 철학이라는 것이다.
왜? 경험에서 검증돼야 되기 때문에, 사유의 구조물인 서양 철학은 존재하지 않고 만질 수 없는 것, 실재하지
않는 것들의 조직으로 되어 있다.
 
이 조직은 치밀하게 조작하지 않으면, 이것이 진짜인지 아닌지 검증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서양에서 논리학이
발달한 이유는 없는 걸 가지고 사유를 하니까 논리학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서양에 논리학이 발달한 이유는
철학 자체가 사유의 구조물이기 때문에, 사유 전개가 치밀하게 항상 보장돼야만 된다.
 
그런데 동양 사유는 사유의 치밀함 보다는 경험의 확실성, 경험의 소통, 이것이 더 중요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논리학이 그렇게 필요하지 않았다. 이렇게 지금 이제 동양과 서양을 비교했을 때, 서양의 철학은
사유의 구조물이다. 사유가 경험의 우위에 있다. 관념이 현상 우위에 있다 하는 걸 알았다.
 
  1. 12. 20 이곳 저곳에서 긁어와서 정리… 나무